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했다.


허연




 얼음장 밑을 흘러왔다고 했다.  힘들었던 건 내가 아니라 겨

울이었다고 했다. 우리가 '첫사랑은.....' 어쩌구 하는 70년대

식 방화(邦畫)* 속에서 눈덩이를 던지며 사랑을 좇던 늦은 오

후에 어느새 너는 서걱이는 마른 대숲을 지나 내 곁에 왔다

고 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무릎이 아프다고, 이젠 정말 걸을 수 없

을지도 모른다고, 녹슨 편지함 속에서 울었다. 그런 밤마다 

나는 어머니가 아닌 너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따

뜻했던 몇 가지 기억들을



 다시 돌아온 너에게, 말 없는 눈발로 내 옆에 서 있었던 

쓸쓸함을 묻지 않으리라. 어느 날 막막한 강변로에서 다시 

너를 잃어버리고 창문 틈에 너를 기다린다는 연서를 꽂아 

놓을 때까지, 네가 내 옆에 없음을 알고 전율할 때까지



  낡은 자명종의 태엽을 감으며,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했다.





*방화 : 자기() 나라에서 제작()된 영화()

참조 : www.naver.com(네이버 사전)

 


시집 구매 기념 하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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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다


허연



발이 편한 구두를 신어 본 적이 없었다.


꿈과 계급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죽고 싶었지만 실패한 건 아니었고

난 아무것도 가슴에 묻지 못했다

잠이 깨면 우박 같은 게 내리던 거리

잠결로 쏟아지던 어머니, 하늘에 계신


죽을힘을 다해 꿈꾸는 거리는 몇 달째

공사 중이었고 구멍가게 앞에선

밤마다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졌다

뭘 그렇게 미워하며 살았는지

피 묻은 담벼락엔 미친 듯 살고 싶은

우리가 남아 있었다. 개새끼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고

어떤 꿈도 몸에 맞지 않았다


우리는 늘 그리워했으므로

그리움이 뭔지 몰랐고







구매했던 허연의 시집이 도착했다.


불온한 검은피와 오십 미터


고민고민을 하며(이번달 생활비를 다써서) 구매햇는데, 역시 구매하길 잘했다.


허연의 시집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시로 상처를 치유하고,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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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허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 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 했는 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던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같았던 내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에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딘가로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에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에게 올해 칠월은 정말 힘들 시기였다.

그녀와의 이별, 잘 풀리지 않는 일들, 금전적 불안,

다행이 비는 많이 오지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그 힘든 시기여도 나에게 여름은 가장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시의 구절처럼 칠월의 길엔 내 체념과 

그녀와 함께 봤던 흑백영화와

그럼에도 나를 떠나 가버린 그대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사랑하는 계절이기에 늘 천국이 아니어도

체념 뿐이어도 사랑할 수 있는 계절

나는 그런 여름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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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삼십세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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