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반들반들한 손목 안쪽.

뜨거운 프라이팬이 젖은 싱크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지면서 솟아오르는 증기.

 - 중략 - 

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p254 - 255


나는 안다, 이제는 바꿀수도, 만회할 수도 없음을.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차제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중략-


나는 용마루처럼 솟아오른 강의 파도가 달빛에 반짝이며 우릴 지나쳐 기세좋게 거슬러올라가 사라지는 가운데, 

한 무리의 학생들이 어둠 속에서 손에 든 회중전등 빛줄기를 교차시키며, 고함을 지르며 그 뒤를 따르던 광경을 생각했다.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책의 많은 구절들 중에 시작과 끝만 적은 이유는 시작과 끝에 모든 이야기를 함축해 놨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한 평범한(자신을 지독히 평범하다고 이야기하는) 남자가 자신이 사랑한 여자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친구가 가로챘다고 생각하고 쓴 편지로 인해 이러난 파국적인 상황에 자신이 아무것도 할수 없음을 깨닫는 이야기.


나는 책을 읽고 난 후 

 

어째서 토니가 윤리적 죄의식을 느끼야 하는지 생각했다.

나 또한 토니라면 죄의식을 느끼겠지만.

책속에서 토니가 예상한 상대의 반응은 단 하나도 맞지 않았는데, 

당연히 이루어질리 없다고 생각하고 쓴 편지가 그렇게 잘 들어 맞을것이라고 어찌 예상한단 말인가.


무지하고 어리숙한 평균 이상의 상황을 상상해본적 없는 가장 평범한 남자에게 일어난 일 치고는

너무 잔인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책이 끝나고 난 이후 65년을 평범하게 산 토니는, 그의 65년이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많은 생각을 했고, 이야기 하고 싶은데 나의 글쓰기 능력은 너무 부족하다.






제목에 휘둘려 읽게된 책이다. 

단 하나의 예감도 맞지 않았고, 화자는 무지했다.

150 페이지의 책 (영국기준, 우리나라 번역본은 255페이지로 구성되어있다.) 을 300 페이지로 보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의아했으나 

다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책의 이야기는 훌륭하다. 몇번이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가독성 또한 말할 것 없다.


내생각에 이야기는 더 중요한 작가의 의도를 겉에서 감싸 안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하고싶은 이야기가 단순히 '세치 혀(책에서는 세치 팬이라고 해야겠지만)를 놀리지 말라' 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는 모든 인간 즉, 우리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지하다. 어떤것도 모두 알수 없다. 심지어 상대방의 마음속 생각들을 알 도리는 전혀없다.

우연히 누군가를 통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오히려 더 깊숙한 속마음을 숨기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절대 답을 찾을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상대의 반응을 예상해 본다. 

반응은 예상대로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주인공 토니가 예상한 베로니카의 반응은, 혹은 어떤 예상한 일들은 이루어진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니가 저주처럼 퍼부은 그의 편지 내용이 전혀 빗나가지 않고 모두 들어맞은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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